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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바람, 고독과의 싸움 30일, 미국 서부 해안길 3,000km에 도전장을 던지다

Hyeonykim 2008. 10. 25. 10:48
이런저런 위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집 떠나기가 두려우면 안 가면 그만이다. 대신 먼 곳은 영영 못 가고 만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오히려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서양에 ‘Nothing venture, nothing win'이라는 속담이 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모험과 땀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도전의 법칙이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매번 도전 앞에 나는 과감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누구인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다. 사실 나는 이러한 긴장감을 즐긴다. 다만 신중할 뿐이다. 앞으로 매순간 나와의 싸움이 펼쳐질 것이다. 그것을 만끽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와 연애하는 남자

여정은 캐나다 접경지인 시애틀에서 출발해서 태평양 연안의 3개 주 워싱턴, 오리건, 캘리포니아 순서로 북에서 남으로 방향을 잡았다. 멕시코 접경 마을 산 이시드로(San Isidro)를 목적지로 정했으니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셈이다. 내가 이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지인들은 한목소리로 나를 걱정했다. ‘한 달 동안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살려 하느냐', ‘생판 낯선 곳에서 길을 잃거나 강도를 만나거나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면 어찌하느냐' 는 우려가 꼬리를 물었다. 이미 내가 다 했던 생각을 그들의 입으로 다시 듣고 있으려니 ‘정말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나이에도 모험을 할 수 있다는 걸, 나와 비슷한 50대 그리고 60대 선배에게도 보여 주자. 후배와 다음 세대, 나의 귀여운 자식들에게는 도전의 꿈을 심어 주자. 자전거로도 넓은 세상을 마음껏 여행할 수 있음을 보여 주자.' 이런 포부가 가슴 한가득 차오르자 푸른 태평양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길을 내처 달리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 혼자 자전거로 3,000km를 달릴 것이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 꿈같이 내가 그리던 길을 달리고 있다.

여행은 인생을 길고 풍요롭게 한다. 수명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간은 대체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공간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크게 변한다. 똑같은 여든 살을 산 사람이라도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공간적으로 넓은 삶을 살기 때문에 아흔 살, 백 살을 산 것과 마찬가지다. 시공을 확대하는 여행은 투어(Tour)가 아니라 저니(Journey)다. 다시 말해 ‘사람의 공간을 옮겨 놓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자전거를 이용한다. 여행의 수단은 많고 많지만 내가 한결같이 고집하는 것은 자전거다. 자전거만큼 재미있고 유익하고 안전한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별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다

어릴 적 밤하늘의 별똥별을 보며 빌었던 꿈을 좇아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지만 아내와 두 아이들은 인생항로를 바꿀 수 있도록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해외여행은 극소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지리학자 김찬삼 씨의 세계여행기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세계 곳곳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하며 세계여행의 꿈을 키웠다. 그럴 즈음 자전거 한 대가 생기는 큰 행운이 찾아왔다. 학교에 자전거를 가진 학생이 열 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자전거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자전거로 통학을 했고 틈만 나면 서울 시내를 쏘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김찬삼 씨가 좌충우돌했던 지도 속 나라들을 나는 자전거로 가보면 어떨까?'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발끝까지 전율이 퍼져 나갔다.

얼마 뒤 여름방학에 주위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에서 대구까지 첫 장거리 여행을 나섰다. 평택, 옥천, 김천 등을 거쳐 대구에 이르자면 3박 4일 동안 하루 평균 90km를 꼬박 달려야 한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이라 우편엽서를 띄워 가며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고, 여관집 주인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며 잠자리를 해결했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소년은 어딘가 모르게 자신이 훌쩍 자랐음을 느꼈다. 빗속에서 10원짜리 삼립크림빵으로 허기를 때우던 여행의 추억을 간직한 채 소년은 더 넓은 세상을 행해 성장해 갔다.

1976년 첫 직장인 대우건설에 입사하여 이듬해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그것도 수단이라는 오지로 발령이 났다. 수단 부임 전 내내 현지 적응을 위해 겨울 내의를 입고 출근했다. 아프리카 파견 근무 시절에는 폭염 아래서도 자전거를 탔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전거는 나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자전거는 US101 도로를 따라 계속 남으로 달린다. 서부 해안의 주요 간선도로로 꼽히는 이 길은 우리나라로 치면 속초와 부산을 연결하는 7번 국도쯤이다. 깎아지른 절벽, 해식애를 따라 펼쳐지는 ‘오리건 코스트'의 숨막히는 절경,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듯 에메랄드빛 드넓은 태평양과 그 위에 떠 있는 하늘,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경계를 알 수 없다. 마치 어릴 적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우리나라의 투명한 가을 하늘 같다.

나는 자전거 여행의 성공 요소로 제일 먼저 정확하고 정밀한 지도를 꼽는다. 지도는 마법의 그림이자 꿈의 안내자다. 지도만 보면 막연한 꿈의 조망도가 삼차원 입체 공간으로 변하면서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구체화되어 떠오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도 보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지리부도를 펴고 형과 지명 빨리 찾기 놀이를 하며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이제 나는 지도 속 여행이 아니라 내 몸으로 바퀴를 굴려 가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오랜 꿈을 이루는 감격의 시간이다.


길, 바람, 고독 그리고 자유

교민 한 분이 “한 달 동안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해도 이혼 안 당합니까? 대단한 배짱이십니다.”라며 의아해 한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해 주었다. “선배님도 자전거 열심히 타 보세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집사람이 가장 든든한 서포터인걸요. 아이들도 대기업 상무보다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현재의 아버지를 더 자랑스러워 한답니다.”

어디 자전거뿐이겠는가. 나처럼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는 빠져들 것이 많다. 어딘가에 집중하는 사람은 늘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긴장은 삶에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할 대상을 하나 정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도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 작은 씨앗이 자라 우리의 인생에 놀랍도록 풍성한 열매를 선물해 주는 것이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에서는 언덕 하나의 거리도 3~4km가 보통이다. 말하자면 대관령 규모인데, 태평양에 면한 서부 해안길의 특징은 이런 언덕이 줄기차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언덕을 오르내릴 때는 내려가는 탄력을 이용해 다음 언덕의 7~8부 능선까지 올라가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자전거 타기의 묘미는 짜릿한 다운 힐에 있다. 무거운 짐을 싣고 몇 시간 동안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이게 무슨 고행인가, 내가 왜 이런 고생을 돈 들여가며 자처하나'하는 생각에 그냥 자전거를 돌려 내려가고 싶은 순간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여행뿐만 아니라 인생살이를 통해 언제까지나 오르막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이 속도가 짜릿하다.

10일 동안 거의 1,000km를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끝내 몸이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엉덩이에 콩알만한 땀띠가 돋아 페달을 밟을 때마다 쿡쿡 찌르더니 왼쪽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진통제로 겨우 버티며 달리고 또 달렸다. 길에서 만난 미국인 라이더들은 ‘MTB를 개조해 30kg짜리 짐을 매단 채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캠핑장에서 잠을 자며, 한 달 예정으로 멕시코 국경까지 달리는' 나의 여정을 ‘진짜 하드코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주었다.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반환점을 돌아 샌디에이고 교외에 진입했다. 최종 목적지인 중심부 ‘컨보이가' 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나와 나의 분신 애마가 서부의 땅 끝 마을에 궤적을 남긴 것이다. 소실점이 보일 정도로 길고 길었던 길, 형체를 알 수 없이 나를 괴롭히던 끝없는 바람, 수없이 흘린 땀방울, 왼쪽 무릎의 통증으로 언덕 밑에 쭈그리고 앉아 ‘오른쪽마저 고장 나기 전에 여행을 접어야 하나?'하며 갈등하던 장면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쳤다.

비로소 30년 전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이것이 완결이 아니다. 나는 이미 다른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자전거 축제'는 영영 나를 놔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주어진 삶에 열심히 뿌리를 내리다 어느 날 문득, 목이 마를 때 다시 이 바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어떤 길, 바람, 고독 그리고 자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차백성 / 자전거 여행가, <아메리카 로드> 저자